詩 隨筆 等

가을에 / 시인 정한모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2. 7. 20. 16:06

 

 

가을에  /  시인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 <여백을 위한 서정>(1959) =

 

첨부이미지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기구적(祈求的), 휴머니즘적, 고백적, 낭만적, 주지적, 문명비판적

 

◆ 표현

* 절대자를 향한 간절한 기도의 형식을 취함.

* 경어체를 통해 경건하고 간곡한 호소의 분위기를 자아냄.

* 대조적(밝음과 어두움) 이미지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함.

       (나뭇잎, 미소, 아가의 작은 손아귀, 할머니의 말씀, 소중한 꿈 ↔ 해저, 공포의 기억)

* 대립적인 이분법적 구조(공포의 이미지<큰 것> ↔ 순수의 이미지<작고 여린 것>)

* 동화적 모티프를 삽입하여 인간성을 옹호하려는 순수 의지를 드러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나뭇잎, 반짝이는 미소 → 비록 미약하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것

(인간들 간의 사랑, 믿음, 진실 등)

* 커다란 세계 →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어둠의 세계(전쟁의 상황을 연상),

거대한 문명 세계

*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 믿게 해 주십시오

   → 나뭇잎과도 같이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작은 진실(사랑)로도
이 거대한 세상에 침몰 당하지 않고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달라고,
절대자를 향한 기원을 담고 있음.

 

*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 청각의 시각화(공감각적 이미지)

* 아가 → 순진무구, 평화, 즐거움, 안식 등의 이미지

              어둠과 폭력의 현실 속에서도 인간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은 존재

*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 비정한 세계에 놓여진 보잘것없는 인간 존재 상징

* 마침내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 해저 같은 그날

   → 바닷속 깊은 심연의 암흑과도 같은, 아득하고 혼미한 종말의 시대 표상

       인류 세계의 파멸이나 인간성이 완전히 상실된 시대 상징

 

* 4연의 동화적 요소

   → 동화는 순진한 꿈과 인간적 진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순수한 세계에 대한 소망을 잃어 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염원함.
(현대의 물질문명과 폭력성에 의한 인간 상실의 비애와 원초적인 생의 순수함 염원)

*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 이 무서운 진리

   → 어린 시절 병석에서 느꼈던 공포가 현실이 되어 버린 상황임.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해 비인간적인 것이 범람하는 50년대의
공포스러운 현실, 즉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폭력을 의미함.

*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 → 이웃에 대한 신뢰와 사랑

 

◆ 제재 : 아가의 기도

◆ 주제 : 순수한 인간성으로 세계의 폭력과 공포를 극복하려는

소망, 인간성 옹호에 대한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