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풍경 (1)
제노바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주의 주도(州都). 리구리아 해에 면해 있는 항구 도시로,
이탈리아 제일의 무역항이며, 중세에는 동방 무역의 중계지로 번영하였다. 밀라노, 토리노와 더불어
북부 이탈리아 공업 지대의 중심을 이루며 관광지로 유명하다. 영어 이름은 ‘제노아(Genoa)’이다.
제노바를 경유해서 피사를 간다고 해서 숙박하고 제노바를 관광하고
피사를 가느줄 알었는데 .....
숙박한 호텔 정원
제노바를 자나면서 차 안에서 시내모습을 담었습니다.
휴게소
피사에 도착하여 제일먼저 할일은 버스가 첵크를 받는것이다.
피사는 리구리아 해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 아르노 강을 끼고 있다.
고대 피사에는 로마 제국이 해군기지로 쓰기 전까지 리구리아인들이 거주했다.
BC 180년 이후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313년에 그리스도교 주교관구가 되었다.
중세 동안 이곳은 강성한 토스카나의
도시국가이면서 활발한 상업 중심지였다.
11세기에 토스카나의 거대한 후배지에서 나오는 생산물과 유통을
이용·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침략자들에 대항하는 데 있어서도 앞장 섰다
피사 시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출생지로서 아직도 대주교관구이며, 큰 대학교가 있다.
또한 중요한 철도 교차점이며, 경공업의 발달로 도시가 번창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크게 파괴되어
풍치가 줄어들었으나, 약간의 붕괴 위험마저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 을 보기
위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구 85,379(2001 추계).
피사의 사탑(피사대성당에 있는종루)을 보기 위해 골목골목으로 가이드를 따라 갔다.
피사의사탑이 있는 성밖의 모습
피사의탑
기단이 가라앉아 수직면에서 5.2m 기울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피사의 성당 복합체 가운데 3번째이며 마지막인 구조물로 1174년에 착공된 이 종탑은
56m 높이로 설계되어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건물의 기초부가 무른 땅속으로 기울어지게 가라앉는 것을 발견한 때는
이미 전체 8층 중 3층까지 완공되어 있었다.
책임 기술자였던 본나노 피사노는 기울어진 모양을 보정하기 위해
새로 층을 올릴 때 기울어져 짧아진 쪽을 더 높게 만들었으나,
추가된 석재의 무게로 더욱 가라앉게 되었다.
기술자들이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몇 번씩 공사를 중단했으나
결국 14세기에 맨 꼭대기층이 기울어진 채 완성.
근대에 들어서 기초에 액상 시멘트를 주입해 보강했음에도
20세기 후반까지 여전히 붕괴의 위험이 있어
사탑을 구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이 구상되고 있다
피사의사탑이 있는 미라콜리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이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모습.
피사 세례당
피사 대성당
피사 대성당은 유럽중세시기에 이탈리아의 상업도시였던 피사에 위치해 있는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건축을 대표하는 주교좌 성당(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피사의 사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종루, 세례당, 묘지 캄포산토(성스러운 토지라는 뜻) 등을 갖추었다.
이 성당은 팔레루모 해전의 승리를 기념해서 1064년 그리스인 부스케투스(Buschetus)의
설계에 의해서 기공하였고, 1118년에 헌당되었으며,
12세기 말에 라이날두스(Raynaldus)가 서측 부분을 연장해서 돔을 설치하고
13세기에 파사드가 완성해서 준공했다.
피사 대성당
광장 서쪽에서 바라본 대성당과 피사의사탑.
세례당
미라콜리 광장내에 많은 기념품 판메점이 있다.
광장 서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