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답십리 / 시인 민 영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8. 9. 19. 17:45




답십리

                                                                              -민 영-

                                                       

 

 

     

    하나

    땅거미 지면

    거나해서 돌아온다.

    양 어깨 축 늘어진

    빨래가 되어.

    새벽에 지고 나선

    청석(靑石)의 소금 짐은

    발 끝에 채이는

    돌멩이만도 못하구나!

    촬영소 고개 너머

    십 리(十里) 불빛.

    중랑천 둑방에는

    낄룩새 운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아주까리 마을.

    오리 치는 초막(草幕)에는

    사당이 산다.

    머리가 반백인

    늙은 사당,

    전축 소리만 들려 와도

    어깨춤 춘다.

    김세나 낙양성 십리허(洛陽城十里許)

    에도 덩실거리고,

    심청가 자진모리에도 고개 떨군다.

     

    어디로 간들

    숨통이 트이랴.

    여뀌풀 흐드러진 하빈(河濱)

    기(氣)를 돌린다.

    저자의 왁자지껄

    들 앞에서 멈추고,

    거무튀튀한 쓰거운 물이

    창자를 훑는다.

    내 생애의 만 리의 구름,

    짓씹는 어금니의 허전한 새벽.

 

 

 

    발굽 닳을 때까지!

     

     -<용인 지나는 길에>(1977)-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현실 비판적

◆ 특성

① '답십리'를 공간적 배경과 봇짐 장수라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

② 반어적 표현을 통해 현실적 모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냄.

③ 자조적이고 영탄적인 어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빨래 → 무력감의 비유

* 청석의 소금 → 바다에서 채취되는 소금이라는 데서 소금을 '청석'에 비유함.

* 돌멩이 → 무가치함

* 사당 → 춤과 노래를 파는 떠돌이 여자 공연단

* 늙은 사당 → 시적 화자와 함께 서민층을 대변하는 인물

* 전축 소리만 들려와도 ~ 심청가 자진모리에도 고개 떨군다.

     → 무기력함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소금 장수의 현실 인식을 반어적으로 드러낸 표현

         서민들의 삶의 고달픔과 한의 해소

* 김세나 → 민요를 부른 대중 가수 김세레나

* 어디로 간들 숨통이 트이랴. → 숨막히는 현실

* 여뀌풀 → 생명력과 삶의 의지를 갖게 하는 대상

* 하빈 → 물가

* 기를 돌린다. → 생명력의 회복

* 거무튀튀한 쓰거운 물이 / 창자를 훑는다. → 삶의 고통을 감각적으로 표현함.

* 구름 → 허무한 인생

* 짓씹는 어금니 → 굳은 의지의 표현,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짐.

* 허전한 새벽 → 화자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동시에, 어금니를 깨물며 삶의 의지를 다짐하는 시간임.

* 발굽 닳을 때까지 → 화자 자신을 '말(馬)'에 비유하면서 자조적으로 표현함.

 

◆ 제재 : 소금 장수의 삶

 주제 : 고달픈 삶에 대한 탄식과 자기 긍정

[시상의 흐름(짜임)]

◆ 하나 : 소금 행상으로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현실

◆    둘 : 음악에 흥겨워하는 늙은 사당의 태도

◆    셋 : 여뀌풀을 보며 고단한 삶을 견뎌 내려는 의지를 다지는 화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오염된 중랑천의 주변에 사는, 소금을 파는 봇짐 장수와 오리를 사육하는 늙은 사당의 고단한 삶을 보여 줌으로써, 서민들의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민영은 짧은 시구들 속에 날카로운 비수를 감춘 듯한 표현을 즐겨 구사한다. 단도직입적인 표현을 통해 모순과 허위로 가득찬 세상과 그 안에 무력하게 끼여 있는 자신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유일하고 절대적인 삶의 근거로 긍정한다.

'하나'에서, 소금을 지고 마을마다 떠도는 소금장수는 아름다운 전래 동화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나 현실의 모습은 비참하기만 하다. 소금은 돌멩이만도 못하고 팔리지 않은 소금을 지고 빨래처럼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둘'에서, 도부꾼의 여정에서 만난 머리 흰 사당은 '낙양성 십리허'의 노래에도 흥겨워하고, '심청가' 판소리 가락에도 저절로 흥이 넘쳐난다. 흥겨워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흥겨워하는 늙은 사당은 어쩌면 재미없는 이 세상을 반어적으로 드러내 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셋'에서, 어디를 둘러봐도 모두가 숨막히는 상황들뿐이다. 저자 거리의 시끄러운 모습이나 거무튀튀한 쓰거운 물이 흐르는 중랑천은 바로 자신의 삶의 현장이다. 그러한 암담한 상황 인식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만리의 구름'과 같이 허무함을 인식한다. 그러나 물가에 흐드러진 여뀌풀의 강인한 생명력은 그에게 '어금니 짓씹고' 여기서 살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는 이곳을 절대적인 삶의 근거지로 여기고 자신을 결연히 긍정한다.

모순과 허위로 가득찬 세상을, 공업화의 폐해로 죽어가는 중랑천의 모습으로 구체화하며, 그 안에서 무력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순박한 인간들의 모습을 드러내 현실을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이 곳을 부정하거나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오히려 애정을 느끼고 애착을 갖는다. 봇짐 장수와 머리 흰 사당 등의 고달픈 삶을 긍정하는 화자의 따뜻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