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가을의 기도 / 원로 시인 김현승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8. 9. 14. 17:42


가을의 기도
                                                         - 
김현승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초>(1957)-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종교적, 기구적, 명상적

◆ 시적자아 :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자아 

◆ 표현 : 기도조의 어조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냄.

              동일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함.

              시행의 점층적 증가 

 

◆ 중요시구

      * 낙엽들이 지는 때 → 생명체의 숙명을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운명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다짐하게 하는 시간.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겸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  

      * 겸허한 모국어 → 삶의 본질에 대한 영혼의 소리('훌륭한 작품')

      * 사랑 → 생명체로서 죽음이라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절대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소망.

      * 가장 아름다운 열매 → 원숙한 생의 가치와 절대자로부터 축복받을 큰 깨달음, 열매

      *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사랑은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 가야 하는 당위성을 지닌 것이라는 깨달음이 담긴 표현.

      * 굽이치는 바다 → 인생의 시련과 역경, 젊은 날의 고뇌와 열정          

      * 백합의 골짜기 → 행복한 인생 여정

      * 마른 나뭇가지

           → 여름 내내 화려하게 가꾸었던 잎을 스스로 떨군 나뭇가지의 모습은, 삶의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리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모습을 의미함.          

      * 까마귀 → 절대고독의 경지에 이른 원숙한 존재를 비유한 말.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인생의 고뇌와 환희를 모두 감내한 자) 

◆ 주제 : 삶의 경건한 가치 추구

[시상의 전개방식(구성)]

◆ 1연 : 기도에 대한 염원(영적 충실함과 겸허함)

◆ 2연 : 사랑에 대한 소망(신에 대한 사랑)

◆ 3연 : 고독에 대한 염원(처절한 고독 속에서 인생의 완숙함을 추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가을날의 쓸쓸함과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연결시킨 작품이다. 기독교적 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시인의 삶과 창작을 생각해 볼 때, 종교적 영적 충실함을 갈망하는 시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자신을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까마귀)로 만들어 달라는 자아의 갈망 속에는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인생을 영위하려는 비장함이 담겨 있기도 하다.

[참고사항]

시인의 말  → "까마귀는 '모든 빛깔을 억누르는 검은 빛깔로 저 자신을 두르고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 거친 소리로 울고 가는 광야의 시인이다.' '주검의 빛깔을 두르고 주검을 노래하는 새'이기도 하고, '인간의 고독과 천형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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