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나룻배와 행인 / 원로시인 한용운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8. 9. 14. 17:57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님의 침묵>(1926) -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여성적, 명상적, 상징적, 불교적

■ 표현

    * 경어체 사용으로 경건한 분위기 연출

    * 불교적 명상을 바탕으로 한 상징세계 형상화

    * 수미쌍관의 기법으로 시적 완결성 획득

    * 당신을 위한 헌신적 기다림이 '은유'의 효과를 통해 잘 드러남.

 

■ 중요 시어와 시구

  * 나 → 만해 자신, 불도(佛道), 조국의 광복을 기다리는 자

  * 당신 → 님, 조국, 중생(衆生)

  * 물 → 고해(苦海).  물을 건너는 행위 ― 제도(濟度)

  *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 회자정리요 거자필반이라는 말을 굳게 믿으며 시적화자는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 동안 화자로 하여금 절망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나타남.

 

■ 주제 : 인내와 희생을 통한 사랑의 실천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나와 당신의 관계

■ 2연 : 인내와 희생의 자세

■ 3연 : 헌신적 기다림의 자세

■ 4연 : 나룻배와 행인의 관계 강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나룻배와 행인을 제재로 하여 참된 사랑의 본질이 자비와 인(忍)을 바탕으로 한 희생과 믿음임을 노래한 작품으로 읽는 것이 진실을 발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시에 등장하는 두 인물, 즉 나룻배로 형상화된 시적자아와 행인으로 형상화된 님이 보여주는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시를 제대로 보는 방향 설정이 될 것 같다.   나룻배(시적자아)는 감정의 기복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당신을 건너가게 하는 일(나룻배의 임무)'을 위해 온갖 역경을 묵묵히 견뎌내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반면 행인(님)은 그런 나에 대해 너무 무심하고 일방적이고 무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태도는 시적자아의 희생과 인내의 태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모습이 되고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불교사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종교적 · 관념적 언어로서가 아니라 '나룻배'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시의 주제를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흙발로 짓밟혀도 원망하지 않고(인내),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며(희생), 언제 올지도 모를 당신을 기다리며 낡아가는 나룻배의 헌신성(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님'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로 하여금 절망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2연 3행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이 믿음은 <님의 침묵>의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와 동일한 차원으로, 거자필반(去者必反)의 원리를 믿고 있기에 날마다 '님'을 기다리며 낡아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해에게 있어서 '님'은 현실적으로 떠나고 없지만, 그 '님'과의 이별은 만남이라는 밝은 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는 차원 높은 이별이다. 소월의 '님'은 이미 죽었거나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나 버린 '님'이므로 그의 시가 비탄과 체념적인 어조를 띠고 있는 데 비해, 만해의 '님'은 반드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는 '님'이므로 그의 시는 항상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한편 이 작품을, 창작된 시기인 일제치하와 관련시켜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보면 행인은 우리의 조국이다. 나룻배인 나는 빼앗긴 나라가 다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고, 이러한 마음을 나룻배와 행인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런 전제로 볼 때 '당신'에 대한 헌신적인 기다림은 '조국 광복에 대한 신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생각할 거리]

1. '나룻배'의 시적 의미는?

   → 자기 희생과 구도

2. 제3연의 의미를 설명하시오.

   → 고난을 겪게 하고, 기원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의 간절한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 이 시에는 평이한 일상어가 주로 쓰이고 있다. 이 일상어 사용의 시적 · 정서적 효과에 대해 설명하시오.

  → 일상적인 대상과 경험 속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하도록 하고 있다.

 

[교과서 학습 활동 풀이]

1. '나룻배'와 '행인'이 맺는 관계를 한용운 시에 나오는 '님'의 의미와 관련시켜서 말해 보자.

→ 이 작품도 작자의 다른 시들처럼 '님'에 대한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 노래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을 '나룻배'에 비유하고, '나룻배'와 '행인'의 관계를 통하여 인내와 희생, 그리고 사랑에 대한 숭고한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행인'인 '님'은 나를 흙발로 짓밟지만, '나룻배'로 나타난 시적 화자는 기쁨과 사랑을 느낀다. 왜냐 하면 흙발로 짓밟히는 그 순간만이 그가 '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 곧 '님'을 맞기만 하면 '나룻배', 곧 시적 화자는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를 막론하고 기쁨에 넘쳐 강을 건너게 된다. 바람과 눈비를 맞는 고통 속에서 '밤에서 낮까지', '님'을 기다리던 어느 날, 마침내 '님'은 나룻배를 타게 된다. 그러나 그 뿐, '나룻배'인 그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님'이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으며, 또다시 '님'을기다리면서 날마다 외롭게 낡아가고 있다.

이 작품의 기본 바탕은 욕된 일에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참는 '인욕(忍辱)'과 자기 것을 남에게 아낌 없이 주고 희생함으로써 탐욕을 이겨 내고 사랑을 실천하는 '보시(布施)'의 불교적 윤리의식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흙발로 짓밟혀도 원망하지 않고(인욕), '님'을 안아 물을 건너며(보시), '님'이 오실 때를 기다리는 헌신적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님'은 부처가 된다. 그러나 이 시가 '님'과의 이별을 만남이라는 밝은 긍정으로 전환시킨 차원 높은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고 파악한다면, 이때의 '님'은 단순한 연인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또한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켜 '님'의 부재를 통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파악한다면, 이때의 '님'은 반드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는 '님', 즉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조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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