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살아 있는 날은 / 시인 이해인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8. 9. 14. 18:03


살아 있는 날은

                                                                              - 이해인 -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 <내 혼에 불을 놓아>(1979)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종교적, 명상적, 성찰적, 의지적

◆ 표현

    * 경건한 기도조(고백적, 독백적)의 어조

    *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함과 순수함이 드러남.

    * 비유를 통해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의지를 형상화함.

    * 연상작용에 의해 올바른 삶에 대한 다짐을 이끌어 냄.

    * 연필과 화자(나)의 관계 변화

           : 단순한 사용자와 도구의 관계 → 연필에 대한 인격 부여를 통한 밀착 → 은유에 의한 완전한 일체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갈색 → 경건한 분위기의 색조

    * 연필 → 반성적 삶을 이끄는 제재

    * 글을 쓰겠습니다. → 화자 자신의 삶을 반성해 보는 글을 쓰겠다는 의지를 나타냄.

    * 연하고 부드러운 → 조심스럽고 유연한 태도

    * 몇 번이고 지우며 / 다시 쓰는 나의 하루 →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적 태도

    *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 종교적 수행을 하는 동안의 시련을 의미함.

    * 단정하고 꼿꼿한 → 생김새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인간 내면의 품성을 나타냄(곧고 올바른 삶의 태도).

    * 연필처럼 /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 연필이 지닌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정직'임을 나타냄.

    *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 화자 자신을 연필과 동일시함.

    *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말

    *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 절대자에 순응하는 삶의 태도

    * 4연 → '나'와 갈색 연필의 관계가 절대자인 '당신'과 구도자인 '나'의 관계로 전환되는 부분으로, 시적

         화자는 자신을 '당신'의 '연필'이라고 표현하면서 '당신'의 목적 성취를 위한 도구가 되고자 한다. 즉,

           이를 통해 절대자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을 드러냄.

    * 5연 → 절대자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의지를 꺾고 절대자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을

                           '소멸(절대자를 향한 자기 희생과 헌신)'이라는 시어를 통해 드러냄.

 

◆ 제재 : 연필

◆ 화자 : 종교인으로서 절대자를 향한 구도적 삶의 자세를 다지는 사람

 주제 : 절대자의 뜻에 따라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다짐

[시상의 흐름(짜임)]

◆ 1, 2연 : 반성적 삶을 살아가는 자세

◆ 3연 : 정직한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

◆ 4연 : 절대자의 뜻에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소망

◆ 5연 : 절대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의 다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종교인으로서 시인이 가지고 있는 절대자에 대한 구도적 삶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화자의 삶을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에 비유하여 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쉽게 지울 수 있도록 연하게 쓴 연필 글씨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잘못이 있으면 언제라도 지우고 고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겠다는 반성적 태도의 표현이기도 하다. 화자는 올바른 글씨, 즉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칼에 깎이는 고통을 감수하는 연필처럼 아무리 큰 고통을 겪더라도 정직하고 꼿꼿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비워내고 절대자의 뜻에 따라 살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이러한 구도적, 성찰적 태도를 특별한 기교 없이 평범하고 소박한 표현으로 드러냄으로써 진솔한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이해인(1945 ~ ) :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서울에서 성장함.  1964년 부산 성 베네딕트 수녀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한 후, 필리핀의 성 루이스대학교 영문과를 졸압하였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함. 시집으로는 <민들레의 영토>, <시간의 얼굴>,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내 혼에 불을 놓아>,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다수의 시선집과 산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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