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그런 저녁이 있다 / 시인 나희덕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6. 7. 26. 12:57


 

그런 저녁이 있다 / 시인 나희덕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