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이별가 / 시인 박목월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6. 4. 29. 18:24


 

이별가  / 시인 박목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경상도의 가랑잎>(1968)-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전통적, 운명적, 인간적, 초월적

◆ 표현

* 반복과 점층을 통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고조

* 말끝을 감춤으로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서를 표출함.

* 사투리를 적절히 사용하여 현실감과 운율의 효과를 동시에 얻음.

* '뭐락카노(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와 '오냐(현실 상황에 대한 수긍)'라는 시어가 시 전체를 이끎.

 

◆ 중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뭐락카노 → 운율적 효과

                     소박한 정감의 절실한 분위기를 이끄는 시어

                     의사 소통의 어려움 제시

* 강 → 이승과 저승의 단절의 공간 (강기슭 :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 삶과 죽음의 경계)

* 강에 부는 바람 → 화자와 상대방 사이를 갈라놓는 장애물의 의미

* 동아 밧줄 → 이승에서 맺은 인연('연결, 결합'을 의미)

* 썩어서 동아 밧줄이 삭아 내리는데 → 죽음으로 인해 이승에서의 인연이 소멸되는 상황

* 하직을 말자 → 이별에 대한 거부의 몸짓

*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 ① 인연의 허무함, 덧없음을 나타내는 말

       ② 속세의 인연은 끝났지만, 바람(초월적 존재)에 의한 새로운 인연에 대한 깨달음.

                                  ⇒ 이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

* 흰 옷자라기 → 죽음 상징

* 오냐 오냐 오냐 → '만남-헤어짐-또 다시 만남'이라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

                              현실적 이별에 대한 수용 · 체념의 대답

*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 죽은 이와의 단절감

* 오냐 오냐 오냐 /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 잘 들리지는 않겠지만, '나도 갈테니까 기다리거래이' 라는 말이 아닐까.

       온건한 자기 긍정과 운명적 순응에서 오는 초극의 대답으로 볼 수 있음.

 

◆ 주제 → 죽음을 초월한 그리움과 한(전통적인 이별의 정한)

[시상의 흐름(짜임)]

◆ 1 ∼ 2연 :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감

◆ 3 ~ 5연 : 인연이 다함에 대한 안타까움

◆ 6 ∼ 7연 : 저승에서라도 재회를 소망함.

◆ 8 ∼ 9연 : 이승과 저승의 거리에 대한 수긍(순응과 초극)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시어는 '뭐락카노'이다. 경상도 지역의 방언은 한국 시사(詩史)의 전통에서 볼 때 특이한 예에 속하는데, 이 시어가 소설의 화소(話素)처럼 이야기를 끌고가는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가 강의 저편에서 화자에게 말을 건네나, 바람에 날려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강 이편의 화자 역시 상대에게 뭐라고 외치지만 그 목소리 또한 확연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와 나를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놓은 것은 강 ―― 강은 삶과 죽음의 간격을 의미할 터이다.

그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인연인데 그와 생전에 맺은 인연의 밧줄은 삭아 내리고 있다. 세상살이의 인연은 마치 갈밭을 건너는 바람과도 같이 덧없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되뇌인다. '하직을 말자'고. 나도 머지 않아 강 건너 저 세상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뭐라는지 자세히 들리지는 않지만, 흰 옷자락을 펄럭이며 서 있는 그가 어서 건너오라고 손짓하는 것으로 여겨져 나는 '오냐, 오냐, 오냐'라고 알아들었다는 듯이 대답한다. 나도 곧 갈 거라는 뜻일 게다.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누군가의 죽음에 직면해서, 그 상황(죽음의 상황)에서 가질 만한 많은 갈등을 표현한 작품이다. 죽음에 대한 부정, 죽음으로 인한 그와의 인연의 단절,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안타까움, 죽음에도 어쩔 수 없는 그리움과 한 등이 복잡하게 담겨있지만 의외로 시적인 표현은 단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뭐락카노'라는 의문과 질문으로 시작하여, '오냐'라는 수긍의 대답으로 마무리지어지는 이 시는, 죽음 앞에서의 큰 깨달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참으로 극복할 수 없고 손닿을 수 없는 이승과 죽음의 세계 사이의 거리감을 앞에 두고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은 생사를 초월한 만남의 깨달음으로 시는 종결된다.


 

◆ '이별가'에서 '동아 밧줄'과 '바람'의 함축적 의미

이 시에서 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시적 화자가 '뭐락카노'를 되뇌이며 그의 말을 들으려 할 때, 그('나')와의 이승에서의 인연을 상징하는 '동아 밧줄'은 점차 썩어서 '삭아내'린다. 이것은 그가 이승에서 남겼던 삶의 흔적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리고 인연을 맺었던 나에게까지 그는 잊혀져 가는 것이다. 그것이 못내 아쉬운 나는 그와의 깊은 인연을 생각하며 하직을 말자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한다. 이것은 이승에서의 인연을 저승에까지 계속 연장하고 싶어하는 안타까운 모습의 표현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그와의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이라 선언하며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강이 아무리 넓다 할지라도 우리가 맺은 인연의 바람은 그것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불어 가고 불어 오고 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따라서, '바람에 불려서'와 '바람에 날려서'처럼 장애물의 이미지로 사용되던 바람은 화자와 '나'를 연결해 주는 역할로 변하게 된다.

 

◆ '이별가'의 반복과 점층의 시상 전개

'뭐락카노'의 반복 사용은 이별에 대한 시인의 정한을 담은 표현으로, 1연 → 3연 → 5연으로 갈수록 감정의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8연에서는 다시 감정의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감정의 점층적 표현을 통해 삶과 죽음 사이의 소통을 단절시켜 이승과 저승의 단절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오냐, 오냐, 오냐'도 6연과 9연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긍정의 의미를 지니지만, 운명 순응적인 생각도 반복적으로 담고 있다. 이러한 반복과 점층의 표현은 화자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