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너는 오너라 / 시인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희 오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뒤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실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보자. - <청록집>(19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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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 | |||
[개관정리] ◆ 성격 : 산문적, 낭만적, 복고적, 이상적, 상징적, 미래지향적, 예언적, 열정적 ◆ 표현 * 반복 어구의 나열 * 상징법, 명령법, 돈호법, 의성법, 의태법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복사꽃, 살구꽃, 앵도꽃, 오얏꽃, 벌떼, 나비, 소쩍새 → 생동하는 자연물, 생명체 민족의 만남의 터전인 "민족 해방의 상황(해방공간)"을 표현 침략의 발길에 짓밟힌 강토에 다시금 생명과 평화가 되살아나는 장면 * 다섯 뭍과 여섯 바다 → 오대양 육대주(일제에 의해 쫓겨간 우리 민족이 흩어져 살던 여러 지역) *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서는 게냐 → 철이로 하여금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완전히 제거된 공간에서, 철이를 향한 사무친 그리움을 분출하는 시적 자아의 절규 * 철이 ① 특정한 개인이 아닌, 식민지하의 억압을 피해 나라 밖으로 흩어져 나간 동포에 대한 제유적 표현 ② 일제나 외세에 의해 훼손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생명의 세계 혹은 공동체적 삶의 질서가 유지 보존되던 동심의 세계 ③친근감을 유발할 수 있는 흔한 이름으로, 이러한 평범한 인물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었음을 나타내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음. * 별들 → 일제 탄압을 피해 슬픔을 지닌 채 서로 헤어져야 했고, 광복이 되어 다시 모이는 우리 민족 개개인 * 눈물 → 광복의 기쁨으로 인한 감격의 눈물 * 피 → 일제와 맞서다 흘린 고귀한 희생의 피 * 푸른 빛 깃발 → 희망 상징 * 비둘기, 꽃다발 → 평화와 영광 상징 * 옛날 → 일제에 의해 짓밟히기 전의 , 민족 공동체적 삶이 가능했던 그 시절 * 6연 → 만남에 의해 민족 공동체가 누릴 행복한 삶의 영상
◆ 주제 ⇒ 민족 공동체의 행복한 만남에의 소망 민족의 완전한 화합 소망 | |||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다시 찾은 봄과 평화(해방)로 인한 환희 ◆ 2연 : 헤어진 철이(동포) 생각 ◆ 3연 : 밤낮으로 너를 찾으며 안타까워하는 화자 ◆ 4연 : 돌아온 너의 모든 형제 자매와 친구들 ◆ 5연 : 네가 오기를 갈구함 ◆ 6연 : 너와 함께 옛날의 평화를 다시 누리길 기원함. |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박두진이 자주 구사하는 산문시의 급박한 호흡이 낭만적 격정을 효과적으로 살려주고 있는 작품이다. 박두진은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 산문시의 리듬에 가까운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반복과 나열, 영탄법을 자주 구사하는 산문시로 해방을 맞이하는 우리 민족의 희망과 기쁨을 별다른 형식의 여과 없이 활기찬 리듬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해방은 일제 강점의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동안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해체되었던 전통적인 삶의 질서 즉,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이 이 시대의 주어진 과제였다. 그러나 일제에게 빼앗겼던 것들은 아직도 우리 민족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며, 고향을 떠난 민족들은 아직도 제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박두진은 이런 시대적 상황을 이 시를 통하여 노래하고 있다. 자연과 기독교적 메시아를 추구했던 시인의 비판적 정신이 이 시를 통해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조국해방의 참된 모습을 단순히 국토의 회복으로만 상정하지 않는다. 일제의 탄압에 의해 유랑하던 동포들이 온전히 자신의 삶의 터전인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옛날과 같은 공동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그는 참 해방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그는 '복사꽃'이 핀 고향마을로 '어서 너는 돌아 오너라'고 외친다. 이 시에서 온갖 꽃과 나비가 어울려 있는 공간은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공간이다. 그것은 또한 정다운 동물들이 모두 모여 춤추며 노래하고 앞날을 구가하는 축복과 환희의 공간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 민족에만 국한된 염원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염원을 대변한 것이라 해도 좋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기독교적 세계주의와 박애주의에 바탕을 둔 의지와 갈망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이 한데 어울려 공존한다는 세계 인식은 이미 성경의 시편에도 나타나고 있다. 온갖 동식물과 인간이 화합을 이루고 있는 장면은 바로 기독교적 평화를 구가하는 의미를 지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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