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가을을 묻으며 / 시인 정기모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3. 11. 24. 21:41

 

 가을을 묻으며  / 시인 정기모

 

어젯밤에는 너무도 시린 서리가 내렸는지
성성하게 목대를 흔들던 풀 무덤이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접고 한 곳으로 누워
긴 잠자리를 다듬고 있습니다

 

목덜미에 싸늘한 기운으로 감기는 바람 향기는
늦가을의 달빛처럼 달달하게 익어가는데
풀 무덤 속으로 숨겼던 나의 푸른 날들이
아늑하게 안기다 떠나곤 합니다

 

옷깃 여미는 손끝 따라 동그랗게 그려지는 얼굴은
한 잎의 낙엽을 따라 퇴색되어가는 중인가 봅니다
괜스레 눈물이 흐르는 건 그립다는 말보다 더 진한
그 무게의 세월이겠습니다

 

가을은 붉은 그림자로 온 거리를 물들이다
발목 잡히고 말 내 등 뒤를 가만히 쓰다듬다 떠나면
첫 사랑의 흔적을 기억하며
달빛 가득한 뜰 안에 내 고운 가을을
가만히 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