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봄비 / 시인 변영로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3. 3. 10. 19:59

 

봄비  /  시인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없는 아픈 나의 가슴 !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노래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신생활>(1922)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낭만적, 감상적, 애상적

◆ 표현 : 의인, 직유, 반복, 영탄법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 기다리던 임은 오지 않고, 구름을 탓할 이유도 없는데도
괜스레 서운하고 야속해지는 마음.

    * 부르는 소리 → 실제의 소리라기보다 상상의 소리로,
시인의 내면에 호소력있게 다가오는 소리

(은근한 봄날씨의 분위기가 마치 누가 부르는 것 같을 수도 있음.)

    * 꽃의 입김 → 꽃향기
    * 은실 같은 봄비 → 가늘 게 내리는 봄비
    * 안 올 사람 → 사랑하는 임.  '조국 광복'으로도 볼 수 있음.

◆ 주제 ⇒ 봄비 속에서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시상의 흐름]

 

◆ 1연 : 한가하고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의 서운한 마음
◆ 2연 : 꽃향기 그윽한 속에서의 아픈 마음
◆ 3연 : 봄비 속에서 안 올 사람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주제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서정시로서 은실같이 내리는 봄비를 보면서 오지 않을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따라서 봄비가 묘사 대상이 되어 있지만, 정작 작품의 주제는
봄비라기 보다는 시인의 어떤 상실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인은 봄비를 푸른 하늘의 구름이나 연약한 숨결을
느끼게 하는 꽃, 은실같은 것에 견주어서 묘사한다. 
봄비와 이런 부드럽고 약한 것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연과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시인이 이와 같은 가냘픈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그 자신의 심정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시인은 안 올 사람을 기다리는데, 그것은 부재하기 때문에
시인의 마음에 강력하게 존재하는 대상이다.

서정시는 이처럼 주체의 심정이나 정감을
표현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다.
여성 편향적 어조와 함께 시인의 감각적인 통찰로 빚어진 이 작품의
아름다운 정감과 선율은 그윽하고 부드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