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의 하회(河回)마을 ◑
안동 하회마을(安東 河回마을)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민속마을이지요
이 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9점 등을 포함하여 11점이고
이밖에 국보 2점이 있어요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제34차 회의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었지요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어요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지요
또한 하회마을은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마을이지요
하회마을은 고려시대 말에 허씨와 안씨 그리고 류씨 성의 세씨족이 새로운
양반 정주지를 찾아 형성한 마을이지요
16세기 말에 류씨 가문은 걸출한 정치가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이는 마을의
건축물 특히 정사를 통해 알수 있어요
이후 마을은 번성하였으나 17세기 말에 허씨와 안씨 일가가 마을을 떠나면서
류씨 단독의 씨족마을이 되었지요
마을은 18세기~19세기까지 계속 커져 갔어요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1991년에는 초등학교가 폐교 되었지요 1990년대에 전통가옥 2채가 새로 지어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따라서 이곳은 풍산 류씨 발상지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지금도 머물러 살고 있지요
풍산 류씨는 이곳에 6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이 마을 주민의 70%가 풍산 류씨이지요
이곳에는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라는 말이 구전되고 있으며 강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는
허정승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다고 하지요
1642년의 동원록(洞員錄)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 가구의 허씨와 안씨가 함께 기재되어 있으며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고 하지요
조선 중기의 문신 서애 류성룡과 겸암 류운룡이 이곳에서 태어 났어요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강거의 제일은 평양이요 계승의 제일은 하회'라고 극찬 하였지요
특히 류성룡은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학설에 따라 이기론(理氣論)을 펼치고 양명학을 비판했으며
이황의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을 좇아 기(氣)는 이(理)가 아니면 생(生)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여
기보다 앞서 있는 실체로서의 이를 규정했어요 류성룡은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이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진(矯枉而過直)’ 폐단에 빠진 것으로 불교의 학설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하나에 치중됨이 없이 병진해야 한다는 지행병진설(知行竝進說)을 주장했지요
그가 남긴 저작 중 징비록은 이러한 ‘알면 행하여야한다’는 지행병진설이 잘 반영된 책으로 알려져 있어요
참혹한 국난의 하나였던 임진왜란에서의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기 위하여 남긴 저술이지요
임진왜란의 전모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어 임진왜란에 관한 많은 기록 가운데서도
귀중한 사료(史料)로 평가되고 있어요
또한 안동 하회마을은 하회탈춤으로도 유명하지요 선유 불꽃놀이는 선비들의 놀이이고,
별신굿 탈놀이는 서민들의 놀이이지요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약 500년 전부터 10년에 한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서낭신에게 별신굿을 해 왔는데 굿과 아울러 서낭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행하여 지던 탈놀이였어요
우리 나라의 탈춤 중 가장 오래된 것이지요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향해 온갖 쓴 소리를 내 뱉어요
이는 서민의 유일한 언로였지요
1928년 이후로 단절되다가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이 화회탈과 함께 발굴하여 재생을 하였고
서울대학교 이두현 교수에 의해 홍보되었어요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선유 줄불놀이는 한여름 무더위가 계속되는 매년 음력 7월 16일 안동의 선비들이 부용대 단애 밑을 흐르는
강 위에서 선유시회를 겸한 불꽃놀이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선유 줄불놀이가 되었어요
그런데 1999년 4월 21일 세계인의 이목이 안동 하회마을에 집중되었지요
1년에 단 두 차례 외국을 방문한다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이곳 시골의 작은 마을 하회를 찾았기 때문이지요
600여년 세월을 종가를 통해 한국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하회마을.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지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에 들러 우리 방식대로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른 모습과 방문 당일이
마침 엘리자베스 여왕의 73회 생일이기에 안동소주 기능보유자가 차린 생일상을 받고
“원더풀”을 연발한 일,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보며 발장단을 맞추었던 일 등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요
비록 상징적일지라도 전 세계 54개국 17억 인구로 구성된 영연방의 대표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한은
국내외 이목을 끌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지요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왕이
멀리 경상도 안동을 찾앗기 때문이지요
방문 이후 정부와 문화계에서는 영국여왕이 왜 안동을 찾았는지 그에 대한 이유를 찾느라 부산했어요
결과적으로 한국문화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물관 진열장 속의 박제된 유물보다
아직도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현장이 훨씬 더 바람직했던 때문이지요
그 후 정부와 국민들은 비로소 전통시대 유교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 우리는 금관과 고려청자 같은 값비싼 유물만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알았지요
하지만 여왕의 방문에서 보았듯 외국인들이 갖는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과 이미지는
소위 ‘때깔’ 좋은 그런 유물들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동방의 등불, 예의지국인 한국에서 가장 동양적인 것을 찾았지요
그 뒤부터 안동의 하회마을은 유명해지기 시작 했어요 -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 *-
▲ 물이 돌아 나간다 하여 하회(河回)라 부르지요
▲ 북촌댁 ▲ 남촌댁 ▲ 염행당 고택 ▲ 영국 여왕 방문과 앤드류 왕자 방문
▲ 하회마을 섶다리 개통
▲ 하회마을 한옥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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