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隨筆 等

꽃 / 시인 이육사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3. 6. 24. 23:09

 

꽃 / 시인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 <육사시집>(1946)  -

 

 

 

 

해        설

[ 개관 정리]

성격 : 의지적, 초극적, 남성적

표현

   * 각 연의 일정한 구조의 반복

                  ( 영탄형의 종결, 1∼3행 까지는 구문의 전개나 시행의 길이가 점층적으로 확장됨.) 

   * 각 연은 '선경(1,2,3행) - 후정(4행)'으로 전개됨.

   * 의지적이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

 

중요시구   

   *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은,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

                 → 극한적 상황 설정(생명이 부정되는 상황)

   * 빨갛게 피는 꽃 → 암담한 상황을 극복하는 의지의 표상.  강렬한 생명력

   *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를 중단없이 꾸려나감.

   *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 → 화자의 의지와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의 표현

   * 꽃성 → 시인의 소망이 이루어진 날의 환상적인 모습.  생명이 힘차고도 흐드러지게 충일한 황홀경

   *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

       → 소망이 이루어진 날, 환희와 더불어 지난날 겪어야만 했던 어려움 · 한 · 희생 등을 주마등처럼

                      떠올려 보는 사람들.

   * 오늘 내 여기 너를 불러 보노라.

       → 현재성을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에 대한 화자의 의지가 예언자적 어투로 표현됨.

 

주제 극한적 현실에서 찬란한 미래의 도래를 신뢰하며 결의를 표명함.

[ 시상의 전개(짜임) ]

■ 1연 : 극한 상황에서의 생명의지

■ 2연 : 극한 상황에서의 밝은 미래를 위한 인고(忍苦)와 신념

■ 3연 :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예언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삶(생명)이 부정되는 암담하고 극한적 현실 상황('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은',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 ) 속에서 새로운 생명 탄생에 대한 기다림을 통해,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의지를 '꽃'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혹자는 이육사의 시정신을 첫째, 식민지적 현실의 투철한 인식과, 둘째, 그같은 인식을 자기화하여 확실한 의지로 정립하고, 셋째, 광복에 대한 확신을 민족단위에서 희생정신으로 포괄하려 했다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시정신의 치열성이 반드시 훌륭한 시로서 구체화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육사의 <절정>, <광야>, <청포도>, <꽃> 등에서 모두 성공적인 형상화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 읽을 거리 ] : 인터넷에서 퍼온 글    

<황혼>에서 보여 준 안식과 평화를 향한 육사의 의지는 <연보>, <노정기>와 같은 비극적 자아 인식으로 깊어져 삶의 비약적 상승과 희망을 꿈꾸는 이 <꽃>이란 작품으로 개화하게 된다. 극한의 식민지 시대 상황 속에서도 '기다림'과 '믿음'의 강인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이 시는 시적 상황 전체가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시의 표현 특징을 살펴 보면 일정한 반복적 구조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기·서·결로 짜여진 이 시는 각 연 모두 4행씩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각 연의 1행부터 3행까지는 구문의 전개와 함께 시행의 길이가 점층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4행에 이르러 화자의 심정을 집중적으로 토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그 매 4행을 모두 영탄형으로 끝맺는 문장 구조를 통해 화자가 자신의 내면 의지를 강화시키는 특징도 갖고 있다.

우선 화자가 처해 있는 현실 상황은 '하늘도 다 끝난' 곳,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곳, '북쪽 툰드라' 같은 척박한 곳으로 설정되어 있다. 생명의 근원적인 모든 요소를 잃어 버린 극한 상황에서도 그는 '저버리지 못할 약속'처럼 '꽃 맹아리가 옴작거리'고,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는 봄날을 기다리며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하루도 쉬임 없이 정진하겠다는 결의를 나타내고 있다. 생명이 부정되는 극한 속에서도 피어난다는 역설적인 '꽃'은 암담한 현실 상황과 대립되는 동시에, 화자의 현실 초월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2연에서도 화자는 극한적 한계 상황에서 '꽃 맹아리'와 '제비떼'를 기다리는 희망과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과 기다림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아니라,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의 확신에서 비롯된 의지의 태도이다. 3연에서는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 실행되었을 때의 밝은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일제의 오랜 질곡에서 벗어난 환희로 가득차 있는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조국 해방의 모습이며, '꽃성'으로 표상된 그 날, 광복의 기쁨에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는 결국 우리 민족의 모습이다.

물론 절대 절명의 극한 상황에서 '꽃이 빨갛게 피'었다는 역설은 마땅히 피어야 할 꽃이 피지 못한다는 의미로, 그만큼 당시가 극한적인 상황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육사는 '저버리지 못할 약속'에 대한 기다림을 갖고 '쉬임 없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그 기다림이란 '북쪽 툰드라'·'찬 새벽'·'눈 속'이라는 일제 치하의 현실 상황에 '꽃 맹아리'·'제비떼'와 같은 생명의 의지를 심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그 '약속'처럼 도래할 찬란한 조국의 미래를 위해 그는 꽃 한 포기 피어나지 못할 만큼의 암울한 역사 현장 속으로 온몸을 던지는 위대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