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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莊陵) 風景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2. 7. 16. 17:27

장릉(莊陵) 風景

숙부 수양대군(首陽大君, 世祖)에 의하여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端宗, 1441~1457년, 재위 1452~1455년)의
‘장릉’(莊陵)을 찾아가는 길은 도로가 잘 다듬어졌다는 오늘날에도 구불거리며, 해발 300m에 가까운 고갯길을

두 번씩이나 넘어야 해 옛날 이 길을 이용해 한양에서 영월까지, 더구나 원주를 거쳐 긴 주천강을 돌고
돌면서 험준한 군둥치와 배일치를 지나 동강이 앞을 막아서고 북으로는 험준한 산이 막힌 오지(奧地) 중의
오지였던 영월에서의 유배지라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급경사가 진 구비를 돌아 영월에 들어서면 신록이 우겨진 가운데 애달픈 삶을 마감했던 단종의 능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조선의 42기 왕릉(王陵)들이 거의 당시 한양에서 100리안에 조성됐지만, 장릉만이 유일하게 멀고도 먼
첩첩산중인 영월에 모셔져 있어 역대의 여느 왕에 비해 유난히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다.
 
장능 입장 매표소
 

단종 역사관
 

왕능으로가는길
 

능원을 들어서면 오른쪽의 '정려각'은 단종의 시신을 몰래 암매장했던
호장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장능 제실

 


제실안에 왕능을 향해 분향할수있는 제단

 


홍살문 끝자락에 있는 영천 제례때에는 이우물을 청소하여 제수로사용

 


장릉입구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홍살문을 따라가면 북쪽을 향해 서 있고
정자각(拜位廳이라 함)까지 어도(御道)와 신도(臣道)가 놓여 있으며,
그 끝에는 영천(靈泉, 제향때 제수로 사용)이 자리하고, 왕릉은 별도의 길로
올라갈 수 있는 등 대부분의 조선왕릉들이 홍살문, 정자각, 봉분이 일직선으로
위치하지만, 장릉은 특별한 경우라 아니할 수 없다

 


왕릉에 다다르면 곡장(曲墻) 3면, 혼유석(魂遊石) 1개, 명등석(明燈石) 1개,
망주석(望柱石) 1쌍, 문인석(文人石) 1쌍, 마석(馬石) 1쌍, 양석(羊石) 1쌍,
호석(虎石) 1쌍 등으로 배치돼 있는 데, 추봉된 왕릉이라 명등석의 밑돌과
가운데 돌 사이의 받침돌인 간석(竿石)과 봉분 주위를 둘러 세운 병풍석(屛風石),
무인석(武人石) 등이 없으며, 호위 동물석이 적은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왕릉 중에 장릉에만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忠信位) 32인,
조사위(朝使位) 186인,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44인, 여인위(女人位) 6인 등
총 268인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이 있고, 한식날(현재는 4월 셋째주 토요일)
단종제향때 함께 제례를 올리고 있는 것도 특징이며, 단종이 처음 머물렀던 청령포는
‘물의 지옥’ 이라 일컬어지듯이 동강이 가로막혀 배를 타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천혜의 유배지라 아니할 수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