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 言

국화 와 한시(菊花와 漢詩)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9. 12. 5. 16:24

국화 와 한시 (菊花와 漢詩)

● 충신과 열녀의 이미지, 굳고 결곡하여라 국화야, 너는 어이 3월 동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李鼎輔, 1693~1766)의 시조이다.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꿋꿋한 절개가 ‘오상고절(傲霜孤節)’이다. 

이 말은 소동파의 〈겨울 풍경(冬景)〉이라는 시에 “연꽃은 지고 나면 비를 받칠 덮개가 없지만, 

국화는 시들어도 서리를 이겨내는 가지가 있다(荷盡已無擎雨蓋, 菊殘猶有傲霜枝)”라는 대목에서 유래한 듯하다. 

도연명과 관련한 국화의 이미지가 은일자의 모습이었다면, 이제 국화는 말을 삼가고 역경을 견디는 인고를 

넘어 매운 향기를 지닌 기품 있는 절개의 풍도(風度)로 다가온다. 


국화 이미지에 가장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은 역시 도연명이지만 

그전에 굴원(屈原, BC343?~BC278?)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 

굴원은 〈이소(離騷)〉에서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먹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라고 노래하였다. 

굴원은 충신이다. 이런 충신의 이미지가 국화와 결합해 있다. 

명종 때 송순(宋純, 1493~1582)도 국화에 충신의 의미를 담은 시조를 지은 적이 있는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대국유감(對菊有感)〉이 있다. 


인정이 어찌하여 무정한 물건과 같은지 人情那似物無情 요즘엔 닥치는 일마다 불평이 늘어간다. 

觸境年來漸不平 우연히 동쪽 울 바라보니 부끄럽기만 하네 偶向東籬羞滿面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마주하고 있으니. 

眞黃花對僞淵明 목은은 왜 국화꽃을 보며 얼굴 가득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자신을 가짜 도연명이라고 자조하는 것일까? 

이기(李墍, 1522~1600)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 이 시에 대한 배경 설명이 풍부하다. 

고려말에 우왕(禑王)이 폐위되어 강화(江華)에 있을 때에 목은이 미복(微服)으로 가서 

뵌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국화(菊花)를 보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또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필(月汀漫筆)]에는 길재(吉再)가 목은에게 거취에 대한 의리를 물었을 때,

 “나는 대신이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과 함께해야 하니 떠나갈 수 없지만 그대는 떠나가도 좋다” 하였다.

 목은이 그때 장단의 별장에 있다가 그에게 “기러기 한 마리 하늘 높이 떠 있다

(飛鴻一箇在冥冥)”라는 시구를 지어주었는데, 

당시 목은의 심사가 잘 녹아 있다. 서애 유성룡도 “진짜 국화가 가짜 연명을 마주하고 있다

(眞黃花對僞淵明)”에 목은의 마음이 다 담겨 있다고 논평하고는 슬프다고 하였다. 

시류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애초 부끄러움이 없을 터인데, 절개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끄럽다고 한 목은의 심정을 읽은 때문이 아닐까.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스물다섯에 쓴 〈국화탄(菊花嘆)〉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으나 人雖可與語 미친 그 마음 나는 미워하고 吾惡其心狂 꽃은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花雖不解語 꽃다운 그 마음 나는 사랑한다. 

我愛其心芳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지만 平生不飮酒 너를 위해 한 잔 술을 들고 爲汝擧一觴 평소에 웃지 않지만 

平生不啓齒 너를 위해 한바탕 웃어보리라.

 爲汝笑一場 시인은 별로 웃어볼 일 없는 세상에 찬란하게 핀 국화를 보고 위안을 받고 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세태를 한탄하는 뜻과 훗날 사직(社稷)과 운명을 함께한 지조를 읽어볼 수 있다. 

같은 시에 “마침 10월로 바뀌는 즈음이라 날씨가 점점 추워지건만, 

찬란하게 옛 모습 드러내고 유유히 맑은 향기 지니고 있네(正當十月交, 風日漸寒涼. 粲粲發舊態, 悠悠抱淸香)”라고 

한 구절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해 보이고 있는 듯도 하다. 


포은(圃隱) 역시 고려 말엽에 한 승려가 “강남 만 리에 들꽃이 만발하였으니, 봄바람 부는 어느 곳인들 

좋은 산 아니겠는가(江南萬里野花發, 何處春風不好山)”라고 하여 몸을 피할 것을 암유하자, 

눈물을 흘리며, “아, 이제 늦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는 이야기가 여러 문헌에 전한다. 

목은과 포은의 행적과 일화에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일찍이 문일평은 정몽주의 이 시를 소개하면서 “국화가 충신에게 사랑을 받고, 충신이 국화를 사랑한 것은 

그럴듯한 일이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듯하다.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곤장을 맞는 춘향의 노래에도 국화가 나온다. 

이해조(李海朝)가 [춘향전]을 개작한 신소설 [옥중화(獄中花)] 중 한 대목이다. 

구자(九字) 낫을 딱 부치니 구자로 아뢰리다. 구고(九臯)의 학이 되어 구만장공(九萬長空) 높이 날아 

구곡간장(九曲肝腸) 맺힌 한을 구중심처(九重深處) 아뢰고져 구월상풍(九月霜風) 요락(搖落)한들 

구월황하(九月黃花) 이우릿가 아홉 구(九) 자를 반복하여 자신의 절개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 절개의 상징물로 ‘구월황화(九月黃花)’, 즉 국화를 등장시키고 있다. 

여기서 국화는 절개나 충절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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