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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懲毖錄) 저술 목적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8. 1. 6. 17:31




징비록(懲毖錄) 저술 목적


징비록(懲毖錄)은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자료이다. 

‘징비’는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스스로를 미리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의‘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이라는 문장에서 따왔다. 


방비를 하지 못하여 전국토가 불에 타버린 참혹했던 임진왜란의 경험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하자는 뜻에서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이 책은 1599년 2월 집필하기 시작하여 1604년에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사본 징비록은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필자 손자의 요청으로 

1647년(인조 25)에 16권 7책으로 간행했다.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 명나라의 지원병 파견 및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관련 전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징비록(번역본) 징비록에는 또 조정 내의 분열, 

임금과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불신, 

무사안일로 일관했던 상당수 관료와 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조선의 전쟁준비 소홀과 그로 인해 유발된 참담한 결과를 묘사했다. 

징비록은 1969년 11월 7일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징비록이나 선조실록 등 중앙의 고급관료가 집필한 사서에서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기술하기 때문에 사실관계 전달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징비록에서는 부산첨사 정발이 절영도로 사냥을 나갔다가일본군이 바다를 메우며 

몰려오자 부산성으로 달아났으며, 일본군이 뒤따라와 성을 

함락시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방행정관이 일본의 공격으로부터 관문인 부산을 방비해야 할 필요성을 

조정에 보고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던 중앙의 고급관료들이 

조선군이 일본군과의 첫 전투인 부산성 전투에서 참패하고 전멸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방의 행정관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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