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Chagall (Mark Zakharovich Shagal)
(1887 - 1985)
러시아 출신 유대계 프랑스 화가. 비텝스크 출생. 고향마을의 미술학원에서 배운 뒤,
19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미술장려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이듬해에는 L. 박스트의 미술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유럽근대미술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
1910년에 파리로 가서 1914년까지 머물렀다. 그 사이에 A. 모딜리아니·C. 수틴·J. 들로네 등을 알게 되었고,
시인 B. 상드라르·G. 아폴리네르 등과도 친분을 맺었다.
또 1911년의 앵데팡당전에 첫 출품을 하고, 1914년에는 베를린 데어슈투름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지기 위해 독일을 방문, 그 길로 고향에 돌아왔으나,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그대로 러시아에 머물렀다.
1915년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하였는데, 이것은 샤갈 작품의 중요한 영감(靈感)의 원천이 되었다.
1917년 10월혁명이 일어나자 비텝스크지역 미술위원에 임명되었으며, 미술학교를 창설하였다.
K. 말레비치와 E. 리시츠키를 교수로 초빙하였는데, 말레비치와의 의견대립으로
919년 위원직에서 물러난 후, 모스크바로 옮겨 국립유대극장의 벽화를 그렸다.
1922년 베를린, 이듬해에는 파리로 돌아가서 화상 A. 볼라르의 의뢰로 N. 고골리의 《죽은 혼》의
삽화에 손을 대는 등 차츰 파리의 유력한 화가로서 주목을 받는 동시에,
환상적인 작풍은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높이 평가되었다.
1941년 뉴욕근대미술관 초청으로 미국으로 가서, 제2차세계대전중에는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보냈고,
발레 의상과 무대장치를 담당하였다. 1947년 파리로 돌아갔으며 1950년에는 남프랑스 방스에 머물렀다.
1952년 V. 브로드스키와 재혼, 20세기 회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제작활동의 폭이 넓어 유채·구아슈·판화, 파리 오페라극장의 천장그림,
예루살렘 하다사병원의 스테인드글라스,
그 밖에 조각·도기·무대장치에까지 미치고 있다
. 개인적이며 자전적인 내용, 러시아에 대한 향수, 유대인 특유의 전통과 상징에 대한 경애 등
그의 작품의 기조(基調)는 초기에 이미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파리에서 색채의 발견, 입체파의 영향, 상드라르나 아폴리네르 등 전위시인과의 접촉은
그의 예술에 새로운 자양분이 되었다. 색채와 형태에서 자연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지를 시적으로 구성하였다. 입체파의 경향은 곧 색채가 넘쳐흐르는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로 전환되었고,
그 뒤 그의 환상적 우의표현(寓意表現)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샤갈미술관에 《성서의 메시지(1969∼1973)》 작품군이 있다.
[ 나와 마을 (1911) ] 바이올린 켜는 여인 (1912) ] 결코 여인같지 않은 여인의 지붕 등이 그려진 마을의 하늘쯤 되는 곳에서 춤을 추며 바이올린을 켜는 듯 합니다. 모든 어린이들의 꿈속에서 한번쯤 그려졌을 그림인데요, 여기서도 나타나는 초록색 얼굴이 심상치 않네요.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이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 서커스들은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 그를 그의 고향으로 인도하는 매체였습니다. 첼로 연주가 (1939) ] 첼로화 된 인간은 샤갈 자신을 뜻하는 것이고, 옆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송아지 얼굴의 사람은 그의 부인 벨라랍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그려진 황량하게 눈덮힌 마을은 샤갈의 고향이구요. 그림의 분위기나 형상등이 다소 기괴하면서 환상적이죠. 이 점이 샤갈 그림의 매력인 거 같아요. 거리감이 느껴지면서 그 거리감이 무시되는 듯한 느낌… 피안 없는 시간 (1939) ]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유태인이었던 샤갈이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비극과 고난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 그의 대표작입니다. 피를 흘리는 새는 바이올린으로 슬픈 운명을 연주하는 듯 하네요. 또한 어둡고 우울한 세상 속에서 그 새는 쉴 곳이 없어 보입니다. 썰매와 마돈나 (1947) ] 굉장히 투명하고 깊이있는 푸른 빛이 감도는 작품입니다. 벨라가 죽고 난 후에 그려진 것인데요, 샤갈의 깊은 슬픔이 묻어나 있습니다. 썰매를 타고 가던 마돈나(마리아)가 상승하는 썰매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품안에 예수는 안전해 보이네요. 레지스탕스 (1948) ] 유대인 박해를 목격한 샤갈이 독일과 이태리 그리고 러시아의 스탈린을 대항하는 의도로 10년 동안 제작한 작품입니다. 수난당하는 구원자의 주변에 맴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강렬한 색채로 그렸습니다. 맨 아래 비테부스크 광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화가 자신을 뜻한다고 하네요. [ 생젠의 태양 (1949) ] [ 푸른 서커스 (1950) ] 샤갈은 어린 시절의 추억 중 하나인 서커스를 많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서커스가 샤갈에게 자유로운 공간배치를 허용하게 한 거 같아요. 슬픈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소와 여인의 모습은 몽상적이면서도 안타까운 하나의 로맨스를 연상시키네요. 바바를 위하여 (1955) ] 1952년 65세의 샤갈은 자신보다 25세나 어린 러시아 여성 바바와 결혼합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 샤갈의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인데요. 깨끗한 이미지의 여인 곁에 있는 노란 말은 샤갈 자신을 뜻합니다. 두 인물의 크고 맑은 눈이 인상적입니다. 푸른 얼굴 (1967) ] 샤갈이 많이 제작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풍의 작품입니다. 화폭을 좌우로 양분하여 인생의 그늘과 양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간들과 자연과 사랑으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들을 인생의 말년에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늘진 얼굴의 사람이 오른쪽 끝의 여인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습니다.
|
'繪畵 彫刻 等'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tsik Jury의 그림 (러시아 화가) (0) | 2015.06.01 |
---|---|
베브 두리틀(Bev Doolittle) (0) | 2015.06.01 |
들국화 (유화) 모음 (0) | 2015.06.01 |
르노와르의 작품세계 (0) | 2015.06.01 |
영혼을 찍는 사진 작가들 (0) | 2015.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