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 言

멋과 향기(香氣)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22. 6. 15. 17:15

 

멋과 향기(香氣)


나도 늙어 가는지 밖으로 돌렸던 눈길을 요즘은 내안으로 거두어 들이고 있다. 
그리고 삶의 진실(眞實)을 내마음과 몸에서 찾으려고 한다.

자다가 내 기침소리를 듣고 깨어나 좌정(坐定)을 하고 기침이 
잦아질때를 기다리면서 이 일 저 일 지나온 세월(歲月)을 헤아린다.

둘레의 고마운 은혜(恩惠)속에  살아오면서 내 자신(自身)은 과연 
그런 은혜(恩惠)에 얼마만큼 보답(報答)을 하고있는지 되돌아 본다.

그리고 내게 허락(許諾)된 시간(時間)의 잔고(殘高)가 
얼마쯤 남아있는 지도 생각해 본다.  

나는 기침으로 인한 한 밤중의  이 좌정(坐定)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면서
오히려 즐기고 있다.

별처럼 초롱초롱한 맑은 정신(精神)으로 내 자신(自身)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등잔(燈盞)을 켜 읽고 싶은 글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한낮의 정진(精進)보다는  한밤중의 이 깨어 있음에서 나는 
삶의 투명(透明)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 밤중에 나를 깨워줄 것인가?  이래서 기침에게도
때로는 감사하고 싶다.

이와 같이 늙어감이란 둘레의 여건(與件)이나 사물(事物)을  
거부(拒否)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 들임이다. 언젠가는

이 다음 생(生)의 시작(始作)인  그 죽음까지도 순순히 
받아 들이게 될 것이다.

자연계(自然係)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四季節)이
있듯이  우리들의 인생(人生)에도 사계절(四季節)이 있다.

그러나  자연계(自然係)와 다르다면 우리들 삶에는 개인(
個人)의 의지적(意志的)인 노력(努力)에 따라 그 사계(四季)가 순환적(循環的)이지만 않고 
동시적(同時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육신(肉身)의 나이을 의식(意識)하지않고 무슨 일이건 그것이 삶의 충만(充滿)이 될 수 있다면  
새로 시작(始作)하는 그때가 바로 그 인생(人生)의 씨를 뿌리는 봄일 것이다.

내가 아는 올해 85세(歲)인 어떤 학자(學者)는 불교(佛敎)의 원형(原形)을 
알고 싶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있다.

또 어떤 분은 정년(亭年) 퇴임(退任) 후 대학원(大學院)에 들어가  
평소(平素) 배우고 싶었던 분야(分野)를 공부하고 있다.

금년 90세인 한 할머니는 지금도 벼루에 먹을갈아 붓으로
또박또박 경전(經典)을 베끼는 일로 자신(自身)을 닦아 나가고 있다.

육신(肉身)으로는 인생(人生)의 황혼기(黃昏期)에 들어선
이분들을 어떻게 파장(波長)의 인생(人生)이라고 밀어 낼 수 있겠는가?

살 줄을 아는 사람은 늙어감에 따라 그의 인생(人生)도 잘 익어 
향기(香氣)로운 열매처럼 성숙(成熟)하게 된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나이만큼 성숙(成熟)해져야 한
다고 주장(主張)해온 바이지만 
내 자신(自身)은 과연 성숙의 길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되돌아 본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歲月)의 물결에 실려 늙는다. 늙음은
지극(至極)히 자연(自然)스러운 생명(生命)의 흐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정(亭亭)한 나무처럼  그 기상(氣像)과
아름다움을  지닐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歲月)속에서 터득한 삶의 운치(韻致)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인생(人生)의 향기(香氣)와 멋이다.  

당신은 자신(自身)의  인생(人生)에 어떤 운치(韻致)와  멋을 가꾸고 있는가?

삶의 운치(韻致)와 멋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아름다운 세상(世上)이 아닐까?..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