繪畵 彫刻 等

♡밀레의 '만종(晩鍾)'에 얽힌 슬픈 이야기♡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8. 7. 15. 16:32



 

 

밀레의 '만종(晩鍾)'에 얽힌 슬픈 이야기

 

밀레의 '만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입니다.

그 그림이 밀레의 대표작이라서가 아니라,

초등시절부터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 왔던 그림의

원본를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에

있었던 다른 나라 관람객들도 '모나리자'와 '만종' 앞에 유난히 많이

 몰려있었습니다.그런데 저는 그 때 이 그림 속에 아주 슬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이 그림에 숨어있는

 슬픈 이야기는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한 지인이

바르비종 마을 사진과 사연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글과 사진을 정리하고 다시

편집해 보았습니다.

 

혹시 앞으로 밀레의

'만종'을 보시게 되면

이러한 숨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그 그림을 감상해 보시면 좋겠다 싶어서요.

똑같이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그 배경과 숨은

이야기를 알고서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또한 '아는 것 만큼 보이고,

 아는 것 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프랑스 화가하면

떠오른 사람은 밀레이고,

밀레하면 만종, 이삭줍기, 씨뿌리는 사람 등

명작들이 바르비종( Barbizon) 마을에서 그려졌다고 합니다.

 

바르비종 마을앞

명작을 탄생시킨 넓이를 간음할 수 없는

넓은 경작지. 밀레는 저 먼 숲 근처에서 화필을 들었을 것입니다.

 

 



 

바르비종 마을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바르비종 동구


바르비종 뒤편 마로니에 가 무성하다



바르비종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바르비종 안길 양편은 옛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밀레가 사용했던 화방 , 지금은 유물 전시장 활용





 

밀레화방 입구 이 전시실에는

여러가지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바르비종은 관광지화 되어 고급 휴양지로 변모되고

명작 진품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된 것이다.

1,000 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 를 일구어 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

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작품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 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

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그런데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정말 남 달랐다.

밀레의 '만종'을 보면 누구라도 신성한 노동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 '달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았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달라 붙었는지

' 달리'는 오랜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 달리'의 직관은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 자루를 어린 아이의 관으로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수십 년 후, 이러한

'달리'의 투시력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 그 감자 자루가 초벌

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나, 루소의 활동무대였다.

.

파리의 아틀리에 틀어 밖혀서

아카데믹한 그림만 그리고있는 어용화가들과

인연을 끊고 농촌으로 이주해 움직이는 농민의 모습을

그린테 그드로, 루소, 밀레, 디어스테라페나 등의 미술혁명가들이

농민과 함께 생활하던 곳이다.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