繪畵 彫刻 等

* 요절한 한국의 서양화가 이인성의 작품세계 *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6. 9. 21. 12:24




* 요절한 한국의 서양화가 이인성의 작품세계 *



▲  붉은 배경의 자화상(Self-Portrait in Red)
1940년대, 18X10.5cm, 나무판에 유채
 

 

 

 

 

  

 

 

 

▲  <<해당화 : Sweet Brier Flowers>>
1944, 캔버스에 유채, 228.5X146cm, 호암미술관 소장
1944, Oil on canvas, Collection of Ho-Am Art Museum, Yongin 

 

 

 

 

 




▲  아리랑 고개
1934, 57.5X77.8cm, 종이에 수채, 호암미술관 소장


 




▲  경주 산곡에서
1935, 130.5X195.6cm, 캔버스에 유채, 호암미술관 소장


 




▲  가을 어느날
1934, 96X161.4cm, 캔버스에 유채, 호암미술관 소장

 

 




▲  정물(해당화)
1940년대 후반, 48.5X31.5cm, 종이에 수채


1936년 24세에 일본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던 김옥순과 결혼한 그는 귀국 후 
장인되는 김재명의 남산병원 3층에 현대식 화실을 꾸며 
안정된 가운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1940년 상처하고 실의에 잠기면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1947년 김창경과 재혼하면서 이듬해 서울 동화화랑에서 재기전을 갖게 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그는 참으로 감내하기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1950년 장남 채원군이 탄생하고 제2의 전성기가 열리는가 했지만 
그 해 11월 4일 그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중반, 35.5X45cm, 종이에 수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양화로 조선의 ‘향토색’을 담으려 노력했던 이인성의 흔적은 대구에서 찾을 길이 없다. 
이인성의 활동 반경을 짚어주는 것으로는 봉산 문화거리 입구에 
사각의 표석이 하나 서 있을 뿐이다. 

옛 정취와 연경되는 것은 그나마 약전 골목, 그리고 메마른 도시의 향기같은
한약 냄새가 끝나는 지점의 계산동 성당. 하늘에 닿을 듯한 뾰족 십자가에 
남북으로 길게 익랑(翼廊)을 단 이 고딕식 성당을 이인성은 몇 차례나 화폭에 담았다. 

 

서쪽 하늘을 물들인 이인성의 그림 속의 그 붉은 빛 구도 안에 서 있건만 
천지간에 화가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다.

 




▲  <<백장미 : White Reses>>
1940, 나무판에 유채, 45.3X37.3cm
1940, Oil on wooden board

 

 

 




▲  <<어촌(덕적도 풍경 : Fishing Village)>>
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32X41cm, 개인소장
later 1940's, Oil on canvas

 

 

 

 

 

 

 

 이인성 작. <자화상(Self-Portrait)> 1950,나무에 유채, 26.5X21.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