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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3대화가중 한 명인 라파엘로 소개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3. 11. 10. 22:46

 

 

 

 

 르네상스 3대화가중 한 명인 라파엘로 소개

 

라파엘로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세기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와 같이 활동해야 한다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죠.

어떤 이들은 천재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비관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라파엘로도 그런 부담감을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담감을 떨치고, 두 사람의 스타일을 보고 배우고,

연구하여 자신만의 작품들을 완성했습니다.

후에는 미켈란젤로조차 성공한 라파엘로를 시기, 질투하기도 했다고 해요.

결국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화가의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문화 예술의 중심도시는 이탈리아 북부의 피렌체였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두 화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피렌체 출신이죠.

그러나 라파엘로는 피렌체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작은 지방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인이자 화가였던 아버지의 화실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배웠던 라파엘로는

11살에 고아가 되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뒤 페루자에서 사제였던 삼촌 밑에서 자라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최고의 위치에 오르려는 열망으로

모든 이익을 버리고 피렌체로 떠납니다.

그가 피렌체에 도착한 때는 그 곳의 상징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세워진 직후이며 그의 나이 19살 때 였습니다.


피렌체에서의 라파엘로는 두 거장의 작품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했습니다.

다빈치의 구도와 스푸마토 기법, 미켈란젤로의 인체 표현법등,

최신 회화의 기법을 연구해서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재창조 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명성을 쌓아가던 라파엘로는 당시의 다른 화가들이

로마로 향했던 것처럼 동일하게 로마로 떠납니다.

그 시기에는 교황 율리우스가 로마재건사업을 벌이면서 피렌체는 최고의

문화예술 도시라는 명예를 로마에게 양보해야 했거든요.


로마에서도 부단하게 노력했던 라파엘로는 동향선배의 도움으로 교황이 살고 있는

바티칸궁의 실내장식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구요,

그 곳에서 교황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라파엘로의 실력을 알아본 교황이 다른 모든 화가들에게 각자 작업한 부분을

모두 지우라고 하면서 라파엘로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한 것이죠.

그리고 결국 그는 교황의 봉급을 받는 궁정화가가 됩니다.

교황의 총애를 받게 된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막강한 경쟁자로 부상하게 됩니다.

라파엘로는 자신에게 배운 사람이라며 비난하고 시기하던 미켈란젤로와 그는

결코 사이가 좋을 수 없었죠.

하지만 라파엘로는 성공의 가도를 달려 결국 교황청 문화조정관 자리에까지 오릅니다.

이 때문에 미켈란젤로를 로마를 떠나는 에피소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괴팍하고 독선적인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라파엘로는 우아하고,

지적이며 편안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철학자들, 시인들, 화가들과 어울렸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 했기에, 미켈란젤로는 늘 인파에 둘러싸인 라파엘로를

“부대를 끌고 다니는 병장” 이라 비웃었다고 해요.

어쨌든 세련되고, 활발하며 원만한 성격의 그는 귀족사회의 중심인물이었죠.


밝고 활발한 라파엘로였지만 그의 사생활은 당시 로마의 타락과 함께 했습니다.

그가 머리로 그린 여성은 경건하고 우아한 성모였지만, 그 여성들은 상상력에 의존해서

그린 것 뿐이며 특정 인물을 모델로 삼아 그린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해요.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으며 여러 명의 애인들과 창녀들 속에서 화려한 여성 편력을 보였습니다.

혹시 라파엘로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37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가 걸린 병은 성병이란 설도 있답니다.

 
라파엘로는 짧은 생애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남기며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르네상스 미술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하겠습니다.

 

[삼미신 (1505)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 여신을 그린 것입니다. 세 여인은 정숙, 청순, 사랑을 상징합니다.

남성의 육체는 잘 그리지만, 여성은 잘못 그렸던 미켈란젤로에 비해 부드러운 곡선미가 잘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구도적 조형미가 부족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쿠퍼의 성모 (1506) ]
라파엘로가 그린 많은 성모자상 중 하나입니다.

붉은 성모의 옷은 그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구요.

온유하고 자애로운 성모의 얼굴과 손에 안긴 아기 예수의 얼굴은 많이 닮았죠?

멀리서 뒷배경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고성의 모습과 평화로운 자연의 풍광이

성모자의 평안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 성모자와 아기 성 요한 (1507) ]
아름다운 여정원사, 성모 라고도 불리우는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대표작입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성요한이 함께 있는 이 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환희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오른쪽 아이가 성 요한이구요,

마리아는 사랑스런 예수의 눈빛을 받고 있습니다.

 

[ 솔로몬의 심판 (1508) ]
바티칸 궁 천정화의 한 부분으로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솔로몬의 일화를 그려낸 것입니다.

한 아이를 두고 자신의 아이라 주장하는 두 어머니 앞에서 아이를 반으로 나누자고 하여,

진짜 어머니를 찾은 솔로몬의 지혜는 라파엘로가 찬양하는 지식과 학문에의 추구라고 충분히 인정할만합니다.

대표적인 그리스도교의 지식 체계입니다.

 

[ 아테네 학당 (1510) ]
가장 대표적인 그의 작품으로 지식에의 열정을 신비롭게 그려내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두 사람이 관념세계를 대표하는 플라톤과 과학의 탐구를 상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플라톤 오른편에서 약간 옆으로 선채 열심히 토론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이구요.

재미있는 것은 플라톤의 얼굴은 다빈치, 계단 앞에서 사색에 잠긴 헤라클레스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본 딴 것인데요,

이는 그들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랍니다.

그리고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검은 베레모의 남자가 라파엘로 자신입니다.

 

[ 갈라테아 (1511) ]
상당히 육감적인 여성으로 묘사된 주인공인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가 강건너 사람의 사랑의 노래를 듣는 장면인데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 모델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는 상상 속 인물이라 대답했답니다.

로마 시내의 그 어떤 여성도 아름다움으로 그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고 하네요.

 

 

[ 레오10세 (1518) ]
라파엘로를 휼륭한 초상화가로 인정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라파엘로의 막강한 후원자인 교황 레오 10세가 두 추기경과 함께 그려져 있는 데요.

붉은 색의 벨벳 옷과 포즈가 교황의 위엄과 권위를 잘 표현하고 있지만,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외로움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심리까지 묘사된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 젊은 여인의 초상 (1519) ]
라파엘로는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 고고학 등에도 손을 대었지만 완전한 결실을 본 것을 별로 없습니다.

그에게 있는 진정한 재능은 그가 그린 초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애인 포르나리나를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데요,

그녀의 팔찌에는 <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매너리즘의 시작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