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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수도 사라예보 풍경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2. 12. 23. 22:28

 보스니아의수도 사라예보 풍경

 

1차세계대전의 발발원인이 되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살해당한 "라틴 다리"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에서 7시간을 버스를 타고 네레트바 강을 건너

보스니아 국경지대에 있는 주유소와휴계소에 도착.

 

사라예보에서 일박한 호텔의 더불침대.중간에 견고한 나무로 고정을

해놓아서 가이드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모른다고 합니다.

 

사라예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티토가 이끈 유고슬라비아 연방

보스니아의 수도였던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세르비아 사람과 크로아티아 사람, 그리고 회교도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폐허로 변했다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사라예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런데 갑자기 총소리가 한가로운 거리를 뒤흔들었다.

 길모퉁이를 돌던 호화로운 승용차 한 대가 잠깐 멈칫거렸다.

 그리고 거기에 타고 있던 사람 둘이 총에 맞아 나란히 쓰러졌다

 

 다름 아닌 오스트리아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와 아내 조세핀이었다.

 총을 쏜 사람은 열아홉 살 먹은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시프였다.

프린시프는 곧바로 붙잡혔고 황태자 부부는 15분 남짓 지나 숨을 거두었다,

이것이 세계1차대전의 발발의 원인이 되었다.

 

 

사라예보는 트레베비치 산 기슭을 흐르는 밀랴츠카 강의 좁은 골짜기에 있다.

 이 시는 이슬람교적 특성이 강한 많은 모스크를 비롯해 내부가 장식된 목조주택들과

 옛 투르크인들의 장터가 있고 시민의 거의 절반이 이슬람교도이다.

 주요 모스크로는 베고바드자미야라고도 하는, 가지 후스레프 베이의 사원(1530)과

알리파샤 사원(1560~61) 등이 있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오스만 제국이 1850년 사라예보를 행정중심지로 삼았고

, 이는 1851년 유혈폭동을 유발시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878년 투르크를 축출하고 1908년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공식적으로 합병하자

 믈라다보스나 저항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왕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을 암살했던 1914년 6월 28일에 절정에 달했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이 사건을 대(對)세르비아의 전시동원을 위한

구실로 이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재촉했다.

 

 1918년 사라예보 의회에서 유고슬라비아와의 통합을 선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점령하에서 사라예보의 저항운동 투사들은

독일군에 대항하여 중대한 전투를 여러 차례 치렀다

 

 

이스람 교회

 

산 정상부위에 있는 수도원의 모습.

 

 

보스니아 지역은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로 각종 전쟁의 불씨가 도사린 지역이다.

 90년대 일어난 보스니아 내전이라든가 러시아의 침입에 항상

긴장 상태로 있어야 하는 아픔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발칸반도가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수백 년을 거슬러 오르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예로부터 발칸반도는 지리적 여건상 동서 문명이 끊임없이 충돌했으며,

 그로 인해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을 받았다.

 

 특히 600여 년에 걸친 터키의 지배는 그들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역사적 상황에 비춰 볼 때 오늘날의 민족적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 역사적 이유들의 중심에 드리나 강의 다리가 있다.

 그 다리는 바로 동서 간의 땅의 연결뿐만 아니라 문화의 연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틴다리 끝 오른쪽에서 저격을 했는데 그곳에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 박물관이 있다

 

밀랴츠카 강변의 시가지 모습.

 

구시가지 모습.

 

신시가지 의 모습.

 

 

사라예보는 한 때 "유럽의 예루살렘"이 라고 불리우던 곳이다.

그 도시안에 기독교,이스람교, 정교회 그리고 유대교 까지

각각의 전당을 짓고 각자의 자기 믿음을

충실히 해가던 조화로운 곳이 었다

 

정교회 앞에 있는 사라예보 공원.

 

 

사랑과평화를 상징하는 공원내 조각품

 

 

두개의 탑이 있는 카톨릭 성당은

예수님 성심교회로 1889년에 지어 졌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기념하는 "가자후스레프 배그모스크"

사라예보에서 가장 중요한 최대 이스람 건축물로 1521-1541년에

보스니아를 통치하던 가스 후스레프 베그의

지시에 1530년에 페르시아 건축가<Ajem Esir Ali>지었다.내전중에 파괴되었다가

1996년에 완벽하게 복원 하였다

 

신 시가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