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 言

썩을수록 향기나는 모과처럼

雲山(뭉개구름을 머리에 이고있는 산) 2014. 6. 20. 05:18


 썩을수록 향기나는 모과처럼



 


물안개를 무장무장 피어 올리는 호수를
보러 나선 이른 새벽의 산책길에서였지요.

시인은 모과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푸른빛의 모과
한 알을 주워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벌레 먹은 자리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마악 썩기 시작한 못 생긴 모과 한 알.

별 생각 없이 받아 차 안에 던져
놓았었는데 차를 탈 때마다 달콤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향기의 정체가 궁금하여 차 안을
 뒤지다가 노랗게 잘 익은 문제의
모과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구석에서 익어가며, 썩어가며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세 번 놀라게 만드는
 나무가 모과나무이지요.

못생긴 모양에 놀라고, 향기에 놀라고,
 마지막 떫은맛에 놀라고 마는.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나무참외란 뜻의
목과(木瓜)에서  비롯된 모과란 이름이 
못생긴 것들의 대명사가 된 데에는 
외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시각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썩어가면서도 향기로운 모과처럼 
사람도 나이 들수록 향기로울 수는
 없는 것인지. 시인이 제게 건네준
모과 한 알 속엔 그런 숨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 백승훈의 '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처럼' 중에서 =